1. 캐나다의 퀴벡주는 프랑스어와 영어를 동시에 쓸 수 있는 이중 언어 환경이다. 그러나, 단 하나의 언어만을 구사하는 사람들의 비중이 가장 높은 나라 중 하나인 미국인들은 캐나다인들이 자신들에 비해 좀 느긋한 편이라고 여기는 경우가 많다. 사업가를 '바쁨'(busy에서 business가 나옴)으로 연결짓고 가장 짧은 휴가 기간으로 유명한 나라이므로 그런 점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2. 그런데 이중 언어 사용이 활발한 뇌활동을 보장해준다는 잘못된 신념을 가진 언어학자들이 많은 듯 하다. 이중 언어에 노출되는 것이 뇌 활동을 활발하게 하는 것이 아니고 이중 언어 회로가 일정 수준 이상 장착된 극소수 사람들의 뇌가 원래 다른 대다수 사람들보다 활발한 것이다. 물론 훌륭한 피아니스트가 반드시 첼로 연주에도 능숙할 필요가 없는 것처럼 하나의 악기만 완벽하게 다룰 줄 안다면 충분하다고 본다. 이는 미국을 보면 잘 알 수 있다. 혹은 한자의 수많은 획과 응축된 표현들로 단련된 중국과 일본 사람들을 보아도 비슷한 결론이 나온다. 특히 오늘날처럼 브리태니카 백과 사전을 '소유'할 수 있는 시대에는 '어휘라는 재료'는 누구에게나 공개되어 있다. 그러나 그 재료를 활용하여 자신의 생각을 담아 내는 '인지 능력'이 약하다면 하버드 대학의 도서관에 가만히 앉아 있는 동양인과 다를 바 없을 것이다. 남 탓을 하거나 묻어서 가려는 심리가 제일 위험하다. 그러나 자신들의 모국어를 다 익혔다고 믿는 '착시도'는 아마 한반도가 전 세계에서 가장 높을 것이다. 사실 '한글'이 너무 간단해서 그냥 웬만하면 자신의 말을 글로 표현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수백개 정도의 한정된 단어만 평생 쓰면서 극히 제한된 문장만 구사해도 글로 표현하는데 거의 문제가 없으므로 모국어에 대한 장벽이 없어져 버린다. 그러나 무수한 한자가 기다리는 중국가 일본은 끊임없는 학습을 강요한다. 발음과 철자가 일치하지 않기로 유명한 영어도 단어 학습에 많은 시간을 들여야 한다. 모든 언어는 외국어다. 그리고 가장 편하게 느껴진 언어를 모국어라 하는 것 뿐이다. 그리고 모국어의 크기는 개인별 편차가 아주 크다. 외국어까지 확장하면 다욱 차이가 커진다. 아무튼 외국어까지는 몰라도 '실용성있는 학습량'을 늘려야 한다. 내부 언어 장벽이 필요하다. 진입 장벽을 높여야 한다. 이 학습부담이 전부 아이들에게 전가되면서 입시 지옥이 된 것이다. 중국이나 일본처럼 '한자'를 모르면 잡지조차 못 읽게, 즉 사실상 기능적 문맹자라는 점을 알게 해줘야 한다.
3. 생후 7개월이면 이중 언어의 패턴을 구별한다는 말은 억측이라고 본다. 개소리와 고양이 소리의 구별보다는 어렵지만 두 사람이 사용하는 '소리'의 결이 다르다는 것을 깨닫는 것은 그리 고도의 지적 능력이 필요한 행위는 아니다. 그리고 뭔가 다르다는 점을 알 뿐이지 아직 열 단어 이상도 구사하지 못 한다. 벌에 비유하자면 하늘을 날아오를 때 하루 종일 단 한 번만 날개를 위로 올린 정도로 느린 것이다.
01. 한글로 쓰여진 책을 펼친다. 제목은 '미적분학'이다. 분명히 다 읽을 수 있다. 그러나 이해는 못 한다. 이와 같은 현상이 신문에서도 벌어진다. 분명히 읽어 나가면서 모르는 부분이 많다. 그런데 다 읽었다고 착각을 하게 된다. 만일 중국과 일본이라면 한자가 필수적으로 나오기 때문에 자신이 무엇을 모르는지, 그 사실을 알게 된다. 한글로만 쓰여진 글들은 우리를 속인다.
답글삭제"아빠, 청와대가 뭐야?"
신기한 한글 나라라는 학습지의 광고 문구다. 부모들의 '학구열'(물론 자식에게 그대로 전가하여 닦달만 하면 되므로 아주 편리한 대리 충족 기제임)을 자극한다. '청와대'라는 단어가 권력욕, 혹은 신분 상승 욕구를 불러 일으킨다. 이런 지긋지긋한 속임수가 국민들의 상당수를 사실상 기능적 문맹으로 만들어 버렸다. 청와대라고 읽고 그 뜻을 모른다.
발음 기호를 읽은 것에 불과하다. 그래도 많은 단어를 르지 않는가? 아니다. 어차피 자신이 애용하는 단어는 정해져 있다. 그것만 쓰면 문맹에서 벗어났다고 오해하게 된다. 자신은 불편을 느끼지 못 하기 때문이다. 숨막히는 심리전이 전개되는 것이다. 그러나 중국과 일본은 미장원에서 잡지를 읽으려고 해도 문자를 모르니 답답해진다. 학습량이 달라진다. 물론 한글로 쓴 기사에서도 한국어가 모국어인 이들이 모르는 단어나 어렴풋하게 아는 단어가 많다. 그러나 대충 70 퍼센트만 알아도 나머지는 '읽었기 때문에' 이해했다고 착각하게 될 것이다. 게다가 조용필의 이혼담을 다룬 소프트한 기사이므로 그리 어려운 단어가 없다. 나는 문자 사용자다. 그러나, 같은 시각에 (동경은 정확히 동일하고 북경은 한 시간 차이다) AK48의 어머니들의 수다를 다룬 잡지를 읽으면서 매직 파마를 하는 일본인 주부는 무수한 한자의 늪을 헤쳐나가야 한다. 실질적 문맹 주부들은 그냥 잡지를 읽는 척 할 것이다. 주로 사진만 보겠지만. 그러나 다시 한 번 자신이 문맹에 가깝다는 점을 깨닫고 문자 공부를 하게 된다. TV 자막도 한자라니!